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판도라의 상자 (문단 편집) === 왜 희망인가? === 우선 왜 희망이 마지막에 남은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대체로 쉽게 해석할 수 있다. 대부분 "그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인간은 수많은 재앙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믿으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라는 식으로 해석한다. 문제는 '왜 제우스가 재앙이 가득 담긴 상자에 희망같은 안 어울리는 걸 넣었는가'인데 여기에 대해선 여러가지 해석이나 추측이 많이 있지만 정설이라고 할만한 것은 없다. 큰 틀은 희망을 앞서 해방된 재앙들과 이질적인 선한 힘으로 보느냐, 아니면 희망 역시 재앙 중에 하나로 보느냐에 따라 갈린다. "일들과 날들"에선 남아 있는 희망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인간이 가지는 쓸데없는 희망', 즉 '''[[희망고문|헛된 희망]]'''이라는 마지막 재앙이라고 한다. 근데 그러면 '왜 다른 재앙들은 상자에서 빠져나가니 영향을 끼치는데 희망은 상자에 갇힌 채로 영향을 끼치느냐'고 할 수 있다.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어딘가에서는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이 나오지 못하고 갇혀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즉 '''"미래가 보이지 않음으로써 인간은 절망적인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라는 이야기다. 즉, 미래에 대한 완전한 예지 = 절망이라는 것. 그러므로 이것이 상자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은 희망이라는 뜻이 된다는 것이다. [[주홍 글자]] 및 [[큰 바위 얼굴]] 등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너새니얼 호손]]의 "아이들의 나라"[* 어린이용 신화 버전 원더북으로 판도라와 주변 인물이 모두 '''어린이'''이고 제우스는 '''잘 아는 아저씨'''로 개작되었다.]에서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제우스]]로 추측되는)누군가가 인간들이 어떠한 재앙이 있어도 이겨낼 수 있도록 재앙들 사이에 희망을 넣어둔 것이라는 희망찬 버전도 있다. 뭐 그 재앙을 내리는 주체가 제우스 자신이니 정확히는 일말의 자비라고 해야... 이 버전의 경우는 판도라가 상자를 다시 닫지 않거나, 서둘러 상자를 닫았지만 상자 속에 자신이 남아있다는 희망의 말에 판도라가 다시 상자를 열어 희망이 세상에 나갈 수 있게 한다. 여기서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때 나온 재앙 중엔 계절의 변화와 인간의 노화도 있었다고 나온다.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에는 희망에 관한 괴테의 해석이 나오는데 괴테는 희망에 대해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것으로서 희망은 악인 것이다"라는 해석을 했다. 즉, 희망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현재를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희망고문|현재를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힘든 삶을 통해서 미래를 대비하나 미래에도 더 먼 미래를 위해 고통스런 삶을 살다 생을 마감한다는 의미다.]][* 파우스트 해설서 참조] [[프리드리히 니체]] 또한 비슷하게 해석했다. 사실 헤시오토스 이전의 판본[* B.C. 6C의 애가 시인 메가라의 테오그니스, A.D. 2C의 우화작가인 바브리우스.]에서는 훨씬 단순하게 설명이 되었다. 재앙이 담긴 상자가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축복이 담긴 항아리였다는 것. 즉 그것을 어리석은 자(판도라가 아니다)가 여는 바람에 그 축복들이 다 달아나고 그나마 남은 것이 희망이었다고 한다. 또한 희망이란 것은 주로 고통스러운 상황이나 절망적인 상황에서 지금보다 더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나타내며 본질적으로 '''세상에 재앙이 없으면 희망 또한 존재할 수 없기에''' 재앙들과 함께 갇혀있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